IMF 구제금융사건과 금모으기 운동

2018. 12. 17. 18:29정치&사회&경제

IMF 구제금융사건과 금모으기 운동


IMF 구제금융사건과 금모으기 운동



IMF 구제금융사건이란, 1997년 12월 3일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에 자금을 지원받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2001년 8월 23일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하면서 종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이라고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듣는 용어이다.

IMF란 다음과 같다.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

IMF는 국제투자은행이다.

한 국가에 달러가 부족할 경우 달러를 빌려주고 그에 따른 이자를 받으며 (마치 은행 대출과 같다)

기금은 몇몇의 선진국가에서 출자하는데, 현재는 아래 5개 국가 화폐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달러, 유럽 연합의 유로, 영국의 파운드, 일본의 엔화, 중국의 위안


IMF는 1차 세계대전과 영국 파운드 중심의 국제금융체제가 대공황을 겪으며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후 1944년 7월 22일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서

국제연합 금융·재정 회의를 통해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출범하게 됐다.

이 브레튼 우즈 체제를 통해 IMF가 설립되었다.


IMF는 총재가 존재하는데 역대 총재는 다음과 같다.

대수

이름

국적

임기

초대

카미유 구트

벨기에

1946년 5월 6일 ~ 1951년 5월 5일

2

이바르 루트

스웨덴

1951년 8월 3일 ~ 1956년 10월 3일

3

일페르 야콥

스웨덴

1956년 11월 21일 ~ 1963년 5월 5일

4

피에르폴 슈바이처

프랑스

1963년 9월 1일 ~ 1973년 8월 31일

5

요하너스 비터베인

네덜란드

1973년 9월 1일 ~ 1978년 6월 16일

6

자크 드 라로지에르

프랑스

1978년 6월 17일 ~ 1987년 1월 15일

7

미셸 캉드쉬

프랑스

1987년 1월 16일 ~ 2000년 2월 14일

8

호르스트 쾰러

독일

2000년 5월 1일 ~ 2004년 3월 4일

9

일로드리고 라토

스페인

2004년 6월 7일 ~ 2007년 10월 31일

10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프랑스

2007년 11월 1일 ~ 2011년 5월 19일

11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2011년 7월 5일 ~ 2016년 2월 20일

12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2016년 2월 20일 ~ 2021년 7월 5일 (예정)

우리나라는 미셸 캉드쉬가 총재로 재직중일 때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미셸 캉드쉬 ]


사실, 우리나라는 1997년 처음으로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아니다.


https://www.imf.org/external/np/fin/tad/extarr2.aspx?memberkey1=550&date1Key=2008-09-30

위 IMF 공식 홈페이지의 Korea: History of Lending Arrangements as of September 30, 2008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65년 부터 IMF가 터지기 전인 1985년 까지 계속해서 돈을 빌려왔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IMF 투자은행이다.

그냥 시중은행처럼,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욕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IMF가 무서운 이유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나온 것 처럼 IMF의 경제운영에 따라야 한다는 것에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IMF가 요구했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출처 : http://kilsp.jinbo.net/publish/etc/files/shangjo1.htm

구 분

내 용

경제적 목표

GDP 성장률 : 98년 3%, 99년 잠재성장률 수준(약 5%)

물가상승률 : 5% 이하

경상수지 적자 : 98년 GDP대비 0.5% 이내(97년은 3%)

정부정책

외환보유고 : 98년말까지 2개월분의 외환보유고 적립

재정·금융긴축을 통한 외환보유고 제고, 경상수지 적자 축소

투명·건전·시장중심적 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경제의 위험 분산을 위한 기업의 차입의존도 축소

통화 및 환율정책

목표 :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기조 유지

절차 : IMF스탭과 협의하여 집행

내용 : 물가목표에 맞추어 총유동성(M3) 증가율 인하, 단기적으로 고금리 허용, 변동환율제 유지

재정정책

목표 : 재정적자 축소와 (부실채권정리에 따른) 금융부문 부담 완화를 위해 GDP의 1.5%에 해당하는 (조세와 지출 양 측면의) 재정조정 실시

세수 확대 : 원유세와 특별소비세 인상, 기타 간접세의 과세기준 확대

지출 축소 : 경상경비 축소 및 SOC투자 등의 자본지출 축소

금융산업
구조조정

기본방향 : 명확하고 엄격한 퇴출정책, 강력한 시장과 감독정책, 경쟁촉진

퇴출정책 : 9개 부실 종금사 정리, BIS기준(위험가중 자기자본비율 8%)에 미달하는 은행은 증자나 M&A를 통해 구조조정

예금보장 : 2000년말까지만 전액 보장, 이후부터는 소액예금자만 보호

회계의 투명성 제고 : 외국 회계법인이 대형금융기관의 회계장부 감사

통합금융감독기구 설립 : 독립성 확보 (*두 법안의 입법과정에서 IMF가 자신의 의견을 강력 반영할 계획

한국은행 독립 : 물가안정을 주임무

개방 : 98년 중반까지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 허용

무역 및 자본 자유화

무역자유화 : 무역관련 보조금, 수입선 다변화제도, 규제적인 수입허가제 폐지에 관한 일정표 제시

자본자유화

- 외국인 주식매입한도 : 종목당 한도(현 26%)를 97년말 50%, 98년말 55%로 확대, 1인당 한도(현 7%)를 97년말 50%로 확대

- 채권시장 : 98년 2월까지 단기자금시장 및 회사채 시장 개방 확대

- 기업의 해외차입 : 98년 2월말까지 제한 폐지

기업지배구조

기본방향

- 금융개혁을 통해 재벌의 은행 차입의존 경영행태 쇄신

-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 기업의 위험도에 대한 평가를 향상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조치

- M&A에 대한 규제 대폭 완화

- 기업공시 철저 : 상장기업에 대한 국제적인 회계기준 도입 및 외부감사인에 의한 감사 의무화, 결합재무제표 도입,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폐지

- 파산관련제도 :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보조나 건전기업과의 강제합병 금지

노동시장

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

고용보험제도 강화

기타

금융실명제 : 현행 골격 유지

통계자료의 투명성 제고 : 외환보유고, 금융기관의 경영상황, 통합재정수지 등에 대한 자료를 IMF기준에 맞추어 98년 3월말까지 공표

실행기준에 대한 평가

98년 1월에 추가적인 양적 실행기준 마련

98년에는 3월말, 6월말, 9월말로 맞춰진 실행기준을 3번에 걸쳐 분기별로 검토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나온 것 처럼,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도 부도처리되었는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날짜

부도기업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현 현대제철) 부도

1997년 1월 30일 

 한보건설 및 한보그룹 최종 부도

1997년 3월 20일 

 삼미그룹 부도

1997년 4월 22일 

 진로그룹 부도

1997년 5월 20일 

 대농그룹 부도유예협약

1997년 6월 2일 

 한신공영그룹 부도

1997년 7월 15일 

 기아그룹 협조융자 신청, 사실상 부도

1997년 10월 15일 

 쌍방울그룹 부도

1997년 10월 16일 

 태일정밀 부도

1997년 11월 1일 

 해태그룹 부도

1997년 11월 4일 

 뉴코아 부도

1997년 12월 5일 

 고려증권 부도

1997년 12월 6일 

 한라그룹 부도

1998년 1월 14일 

 나산그룹 (현 인디에프) 부도

1998년 1월 18일 

 극동건설 부도

1998년 5월 12일 

 거평그룹 부도

1998년 7월 1일 

 한일그룹 부도

2000년 10월 30일 

 현대건설 1차 부도

2000년 11월 8일 

 대우자동차 최종 부도 처리

2000년 11월 10일 

 동아건설 부도


우리나라에 IMF가 터진 이유를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출처 : http://wwonka.blog.me/220153555330

1. 외환 보유고 관리 실패

당시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위기로 인해, 이곳에 장기채로 빌려주며 이자차익을 보던 중,

해외 단기채들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아 국내 자금으로 상환. 결과적으로 국내 자금 유출.


2. 환율 운용 정책 실패

동남아시아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위기를 느낀 외국 투자기관이 대규모 회수,

한국 정부는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인위적인 환율 방어를 시작.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외환보유고 급격하게 감소.


3.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 대출

당시 정부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한보그룹과 기아자동차에 불법적인 은행대출.


4. 금융기관과 대기업 부실 경영

금융기관이 해외 업무를 시작하면서 어음교환 시작, 기업이 부도가 나자 연쇄적으로 영향

대기업들의 분식회계와 과도한 차입 부실 경영, 이들과 관련된 작은 기업 연달아 도산 위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주요 스토리로 언급되는 이유들이다.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IMF를 겪으며 실직했고, 자살률도 엄청나게 올랐다.

[ 출처 : http://contents.newsjel.ly/issue/tableau_suicide ]

IMF 시기 전후를 비교해 보면, IMF 사태 직후인 98년 자살률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자살률이 감소하지 않고 증가했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일이다..)



1998년 1월 6일 KBS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금모으기 운동이 시작된다.

금모으기 운동에는 349만명의 국민이 참가하였으며 당시 시세로 21억 7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 모였다.

이는 전체 상환금액의 약 1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상환예정 일보다 3년 빠른 2001년 8월 IMF 사태가 종료되었다.

[ 출처 : 위키피디아 ]

한국연구개발원의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를 떠올렸을 때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한 사람이 42.4%를 차지하였으며,

외환위기를 조기에 상환한 원동력으로는 54.4%로 구조조정 및 개혁노력이 15.2%를 차지 한 것보다 약 3.5대 높은 수치이다.


IMF를 겪으며 우리나라의 직업에 대한 인식 변화도 많이 일어났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들이 많아 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었다.

공무원, 교사 등 공직계열이 직업선호도에서 상위권을 계속 차지하고 있고, 2018년 공무원 경쟁률은 41:1에 육박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며 제도적 의사결정에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했었다.


현재 IMF와 같은 외환위기가 다시 한 번 닥친다면, 과연 금모으기 운동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고통 분담을 하려 들까?

개인적인 생각은 아니다.

조금 만 더 국민의 소리에, 목소리에 답하여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