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키즈 - 거제포로수용소와 소요사건

2018. 12. 23. 15:14영화후기

스윙키즈 - 거제포로수용소와 소요사건



스윙키즈 - 거제포로수용소와 소요사건


금요일 퇴근 후 아쿠아맨을 예매한다는 것이 시간만 보고 잘 못 예매하여 보게 된 스윙키즈.

보고나서는 잘 예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스윙키즈"는 6.25 전쟁(한국전쟁) 중 유엔군과 한국군이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공군(중국군인)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설치한

거제도의 거제포로수용소(Geoje POW Camp)에서 전쟁포로들로 이루어진 댄스단 "스윙키즈"이 결성되어 공연하는 이야기이다.


스윙키즈는 종군기자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 찍은 사진으로 창작된 뮤지컬인 "로기수"(주인공 이름)을 재창작한 영화이다.

(베르너 비숍은 세계적인 자유보도작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의 창립멤버이며 수많은 사진을 남기고 1954년 페루에서 사망하였다.)

[ 좌) 베르너 비숍, 우) 거제포로수용소의 춤 ]


거제포로수용소에 관한 내용을 담은 뮤지컬 뿐만 아니라 소설도 출간되었다.

[ 좌) 뮤지컬 "로기수", 우) 소설 "포로들의 숲" ]



영화를 보고 나서 스윙키즈가 실화인지 궁금해졌다.

재창작되었지만, 정말 있었을 법한 이야기 같기도 하였고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해 관심도 생겼다.



먼저 포로수용소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유엔군에 의해 거제시의 고현동, 수양동, 장평동, 연초면, 남부면 일대에 설치되었으며

그 규모는 12km에 달하였고 1951년 2월부터 포로수용소 업무가 개시되었다.

[ 거제시 지도 ]

현재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고현동에서 운영되고 있다.


1951년 2월 포로수용소 업무가 시작되고 5만 명의 포로 수용을 시작으로

1951년 6월 북한군 15만, 중공군 2만, 의용군 및 여성포로 등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다고 한다.


영화에서 나온 바와 같이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와 이에 반대하는 반공포로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후반에 나온 댄스 후 총격사건은 "거제포로소요사건"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거제포로소요사건" 이란 1952년 5월 7일 제76포로수용소에서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미 육군 F.T도드(Francis T. Dodd) 준장을 납치한 사건이다.

[ F.T도드(Francis T. Dodd) 준장 ]

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조선 인민군 2 사단 참모장(대좌)인 이학구가 주도하였으며

포로들에 대한 처우개선,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방침 철회, 포로 심사 중지 등을 제시하였다.

이에 당시 콜슨(Charles F. Colson)준장이 이에 대해 서면각서를 내고 도드 준장은 석방되었으나

이후 보트너(Hayden L. Boatner) 준장이 이를 전면 무효화를 선언하였다.


[ 이학구 대좌 ]

영화에 나오는 "삼식"역할이 "이학구" 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제도 66수용소에 있으면서 '해방동맹'이라는 친공포로 조직을 지휘하였으며

공산주의자라는 것만 빼고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휴전 이후 1964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거제포로소요사건은, 도드장군이 납치한 사건 외에도 크고 작은 소요사건들이 많았다.

영화 클라이막스에 "광국" 역할을 맡은 이다윗이 외친다.

"니들이 이따위 미제에 정신팔려 있을때 우리 가족 애인 다 양키새끼들 손에 죽어나간다 이 종간나 새끼들아"

눈에 핏기가 올라오며 소리치는 모습에 소름이 다 돋으며 얼마나 울분이 올라왔으면 저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만철" 역할을 맡은 이규성이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거다 미국과 소련이 만든거잖아 그런대 왜 우리 어머니가 죽어야하는데"

라고 눈물을 흘릴 때 과연 나도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았다.


뻐킹 이데올로기

왜 같은 뿌리를 가진 한 민족이 이념으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싸우게 되었을까

요즘, 어떤 "이념"을 가지고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 욕하고, 헐뜯고 있는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이런 사회분위기가 참 아쉽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스윙키즈에 쿠키영상은 없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메이킹필름을 보면서 영화의 여운을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에 "로기수"가 단독 무대를 끝낸 후 총격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종군기자들의 이슈화로 해피엔딩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뻔한 연말영화가 되었을 지 모르지만, 가슴 따뜻한 영화가 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용한 사진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http://www.pow.or.kr), 위피피디아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